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문단 편집) === 일반인 & 승무원 피해 상황 === [[파일:external/inkg.co.kr/%ED%81%AC%EA%B8%B0%EB%B3%80%ED%99%98_%EC%84%B8%EC%9B%94%ED%98%B8-%EC%9D%BC%EB%B0%98%EC%9D%B8-%ED%9D%AC%EC%83%9D%EC%9E%90.jpg]] 세월호 탑승객 중 [[단원고등학교|단원고]] 학생 325명과 교사 인솔진 14명을 제외한 일반인 승객은 104명이었다. 일반인 승객의 생존율이 단원고 학생에 비해 높았던 것은[* 이 역시 학생들에 비해 높은 생존율이지 많이 생존한 것은 아니다.] 일반인들은 사고 당시 인원 통제를 받지 않고 개별적으로 자유로운 상태였고, 성인이어서 사회 경험&자기 판단에 따라 안내 방송을 믿지 않고 각자 살 길을 찾아 행동했던 것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세월호를 자주 이용했던 화물차 기사들은 30명 중 29명이 구조[[http://news.kbs.co.kr/news/NewsView.do?SEARCH_NEWS_CODE=2853270&ref=D|(#)]]되었는데, 이들이 세월호를 여러 번 타는 과정에서 배의 문제점을 평소에 느끼고 있었고, 배 구조에 익숙하여 비상 상황에서 초행길일 다른 승객들보다 탈출로를 찾는 것이 상대적으로 쉬웠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피해자 중에 [[단원고등학교|단원고]] 학생들이 워낙 많은 비중을 차지하여 일반인 승객들은 인원 집계 등의 구조 작업부터 보상에 이르기까지 관심을 거의 받지를 못했고, 안산에 설치된 합동분향소에서 일반인 승객들은 영정 등의 배치 등에서 배려를 받지 못해 일반인 유족들이 이의제기를 하기도 하였다. [[http://media.daum.net/breakingnews/newsview?newsid=20140428225505414|#]] 이들의 요구사항은 단지 세월호 참사의 같은 피해자로서 동등한 대우와 관심을 가져달라는 것뿐이었다. 향후 설치될 세월호 추모 공원의 대상에서도 일반인 유족들이 대상에서 제외되어 일반인 유족들이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실정. [[http://news1.kr/articles/1688646|#]] 승무원들의 경우 33명 중 23명이[* 선박직 승무원, 조리원 2명, 아르바이트 2명, 사무원 1명.] 구조되었고, 10명이[* 조리원 2명, 사무원 2명, 사무장, 아르바이트 4명, 그 외 1명.] 사망했다. 이번 사건에서는 선박직 중심의 일부 승무원들의 '''막장 행각'''이 워낙에 큰 공분을 일으켰는지라, 승무원 희생자 또는 실종자의 유가족들은 '''세월호 승무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죄인이 된 심정으로 숨 죽이고 있었다고 한다. 다만 사고 초기 서비스직 박지영 씨나 양대홍 사무장의 영웅적 일화와 이후 비선박직 승무원들이 선박직 승무원들에게 사고 정황을 전해듣지 못한 채 처절히 버려졌던 정황이 드러나면서 같은 피해자로 보는 상황. 비정규직 아르바이트생 등은 '''알바라는 이유로 청해진해운으로부터 장례비 지급도 거부 당하여''' [[청해진해운]]에게 맹비난이 쏟아졌다. 한편 언론이 입수한 국정원 보고서와 사망한 [[김영한(공무원)|김영한]] 민정수석이 남긴 비망록에 정부가 [[단원고등학교|단원고]] 유족과 일반인 유족을 분리하고 갈등을 조장하려 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비판을 받고 있다. 사고 발발 후 3년 1개월이 지난 2017년 5월 22일에 일반인 승객으로는 처음으로 이영숙 씨(당시 51세)로 추정되는 유골이 발견됐다. 유골은 구명조끼를 착용한 상태였는데, 복장 상태가 승선 당시 이영숙 씨의 복장과 같고 옷 속에서 이영숙 씨의 신분증까지 발견됐으므로 이변이 없는 한 유골의 신원은 이영숙 씨가 맞을 것이다. 다만 정확한 신원 파악을 위해 역시 유전자 감식 중이다. 그리고 2017년 6월 5일 세월호 선체에서 발굴된 유골 일부를 감식한 결과, 이영숙 씨의 유골이 확인되면서 일반인 희생자로서는 최초로 유골이 수습되어서 299번째 사망자가 되었다. 하지만 권재근 씨, 권혁규 군 부자는[* 이들에 대한 설명은 후술 참고.] 그 이후로도 수습되지 못했고, 1년 4개월 동안 더 수색했지만 끝내 2018년 10월 19일, 마지막 수색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두 사람의 유골이 발견되지 않으면서 세월호에서 내리지 못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